반성군유허비각 (班城君遺墟碑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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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봉소리 299번지

제향인물:  반성군 (班城君 / 휘 斯美 / 7世) 

제향일시: 음력 시월 둘째주 (산소실전으로 유허비 壇祭)

건립시기: 1989년 3월

건   립  자교리공파종중





종1품 숭정대부 반성군(班城君) 휘 사미(斯美 / 7세)께서는 교리공파조 휘 沽의 父로 성균생원, 좌우위보승장 이후 진성감무를 역임하셨다. 보승장 당시  아우 절도사 휘 사인(斯仁 /7세손), 조카 병마우휴  휘 곤(混)과 함께  쌍성회복전투(1356년)에  참여 한 공로로,  휘 사미는 반성군(班城君)에 아우 휘 사인은 선천군(宣川君)에 봉군 되었다.  당시 전장의 노장수들을  감무에 임하는 제도(1390년)가 있어, 보승장 이후 노년에 고향의 진주목에서 속현인 진성감무에 임하신 것으로 본다.  

<세종지리지>에  진주목  반성현의  토착성 기록이 있어,  옥씨가 진주목 반성현 남산리에 세거 한 것으로 보여진다.  족보에 휘 사미께서 김해 남산리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가 그곳으로 보여진다. 아쉽게도 선조의 산소는 실전하였다. 선조가 진주(반성현)에서 돌아가신후 응계조가 어린시절 어머니와 군위 어량곡(군위군 군위읍 외량리)으로 이주하셨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주성을 침략하기 위해 반성현에 주둔 할 때 반성현은 완전 소멸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반성의 종중 역사도 함께 소멸 된듯하다.

반성군유허비각
유허비 정면
유허비 음기(후면 비문)
유허비 음기(후면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