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낭자 정렬문(貞烈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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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낭자 정렬문(貞烈門)


소  재  지 :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 망용산 아래 길가 언덕 위

건립연도 : 1612년(2013년 이축)

배향인물 : 조선조 겸사복(兼司僕)을 지낸 옥 인(璘)公의 따님이시다.


옥낭자 정렬문
옥낭자 정렬문


조선조 겸사복을 지낸 옥인 공의 따님이시며, 산음현감(지금의 산청군)을 지낸 옥화(옥화 감사공 파조 윤의(8세)의 아들)공의 

현손녀이며, 가선대부 병조참의 신암공 천보의 손녀요. 사복시정공 인과 부인 숙인 홍주 전씨의 막내 따님인 옥낭자(처녀라 

이름이 없기 때문에 낭자 또는 처녀로 이름처럼 사용함)의 굳은 정조와 옥곧른 행실을 현창(顯彰)하는 한편 세상 만인에게 귀감

이 되도록 한 정문 꽃집이다.

옥낭자는 용동 심곡촌에서 성장하였는데 자태와 성품이 얌전하고 탁월하여 내칙인 열녀전 등을 조부 신암공에게서 배워 이륜

(彛倫/떳떳이 지켜야할 사람의 도리)의 차례와 상상(綱常/사람이 지틸 도리)의 절차를 이미 깨달아 예의범절이 가히 모범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임진왜란을 피하여 산중으로 피난하여 숨어 지내던 중 간악한 왜병이 들이 닥쳐 수풀 속과 산골짜기를 샅샅이 

뒤지면서 재물을 강탈하였을 뿐 아니라 부녀자를 마구 겁탈하기도 하였다. 미색 고운 옥낭자도 붙들린 채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극력저항으로 왜병은 욕정을 채우지 못하자 총칼로서 난자하고 말았던 것이다.

7년간의 왜란이 끝난 뒤 경상감사의 순시행차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꽃집이 있는 지점에 오니 말이 대가리를 숙이고 꼼짝도

 않는 것이다. 모든 수행원들이 놀랐다. 동네 어른들과 원님을 불러 전후 사정을 물어 보았다. 이 부근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단지 옥낭자가 왜병에게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는 증언을 했던 것이다. 감사는 즉시 주과포혜를 차리고 간략한 제를 드리고 나니

 말과 소가 걸어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감사는 즉시 조정에 장계를 올려 광해군 4년에 왕명을 받아 정문을 세웠고 열행을 적어 기문을 널리 배포하게 했던 것이다.

정문은 올내 세월 훼손되어 영조 13년, 영조 41년, 순조 7년, 헌종 원년, 대한 4년 대한민국 갑자년(1984년)에 중건되었다. 

2010년에는 도로확장공사로 현재위치로 이전하여 건립되었다.